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이징 8월 폭풍 사건 (문단 편집) === 홍위병의 폭주 === >"우리는 사람을 때리는 행위를 옹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설령 사람을 때린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에게 맞으면 맞을 만하기 때문이다." >---- >1966년 7월 28일 [[장칭]]의 교시 1966년 8월 1일, [[마오쩌둥]]은 칭화대학 부설 [[중학교]]의 학생들에게 친전을 보내면서 "모든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뜻의 '''"조반유리(造反有理)"'''라는 문구를 남겼다. 마오쩌둥의 지원사격을 받은 학생들은 곳곳에서 <홍기>, <동풍>따위의 이름을 지어 홍위병을 조직했다. 8월 4일, 칭화대학교 부설 중학교 학생들은 교장과 교감을 흑방의 우두머리로 몰아 조리돌림하여 곤봉과 채찍, 허리띠로 구타했다. 이어 [[베이징]] 사범 대학 교감 볜중윈이 학생들에게 붙잡혀 구타당하고 조리돌림당하고 강제로 흙을 먹는 등의 고문을 당했다. 8월 5일 오후, [[홍위병]]들이 볜중윈을 포함한 학교 관리자 5명을 억류하여 잉크를 뿌려 모욕을 준 다음에 대못이 박힌 곤봉으로 마구 폭행했다. 볜중윈이 몇시간에 걸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자 홍위병들은 볜중윈을 쓰레기차에 버렸다. 2시간 후에 볜중윈은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이미 목숨이 끊어진 후였다. 8월 13일, 베이징 공인 체육장에서 수만명의 홍위병들이 운집한 가운데 군중집회가 열렸다. 홍위병들은 5명의 민간인을 체포하여 홍위병을 위협한 죄로 구타하고 채찍으로 때려 고문했다. 군중집회에는 저우언라이와 왕런중을 비롯한 고위 정치가들도 참여했으나 홍위병들을 막으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이어 베이징 제101중학교에서 홍위병들이 10여명의 교사들을 체포, 달군 석탄재 위를 기어 다니게 했고 베이징 6중학교에서는 홍위병들이 취조실을 설치, 닥치는 대로 사람을 고문하여 인간의 피를 담은 후에 <적색 테러 만세!>라는 구호를 벽에 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